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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들을 적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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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다이빙 2005~2007

 주위사람들중 몇몇은 내가 굉장히 밝고 낙천적인 사람인 줄 안다.
하지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거의 웃을줄 모르는 어둠투성이 인간이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으니.
(지금도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무의식 중에 표정이 얼어버린다.)

적잖은 해를 거듭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은 성장을 했지만. 가장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것이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다는 것, 그것도 다이브마스터까지.
한 분야의 프로가 될 때까지 나 자신을 불사른 때가 있었다는 것.

 

다이빙을 처음 배우고 시작했던 이집트 다합 2005.

특이하게도 폴란드 국적인 인스트럭터,
모니카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그녀는 패닉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나를 다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내 손을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댔다. 당황도 잠시, 어머니의 품속인양
거짓말 같이 진정되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를 Witch라고 부르곤 했다. 탁월한 직관력과 거침없는 성격,
그리고 우리는 같은 천칭자리라며 내 삶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지.

지금은 독일에서 예쁜 아기를 낳고 잘 살고 있다는 그녀.
언젠가는 그때 그 시절 다합의  이야기들을 써 볼 생각이다.

 

인도네시아 롬복섬의 새끼섬, 길리 트라왕안에서.

인도네시아 KOICA로 발령받은 후배의 추천으로
아무 생각없이 왔던 그곳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콜롬비아 타간가에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레스큐다이버와 다이브마스터 코스를 다시 반복해야만 했고, 금전적인 문제보다도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좋게 된 것일수도 있다. 인생공부도 그러하거니와,
어쨌든 프로과정을 두번이나 반복했으니.

두 달 가까이 머무느라 자전거를 샀는데, 다들 이쁘다며 탐을 냈다. 떠날 때 되면 팔라는 사람이 꽤 많을 정도로 나의 노란색 자전거는 길리 트라왕안에서 명물이었다. 내가 아니라. (:

 

다이브마스터의 전통, 스노클로 술 마시기.
뒤에서 술을 부으려는 친구가 나의 선생님이었던 Bob.
매사에 엄격하면서도 은근한 정이 느껴지는 그는 진정한 프로페셔널…!

과정 마지막에 다달아 나 말고 전부 백인인, 왠지 어울리기 힘든 분위기에
지쳐갈 무렵, 나를 챙겨주지 않겠지 하는 기우를 했었다.

사진을 볼때마다 그때의 분위기가 생생하다. 다들 박수치면서 ‘다니’를 환호하던.
중간에 한번 토할 뻔 한걸 참고 끝까지 다 마셨다. (: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한번 방문에 1달씩 밖에 체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간에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다녀와야 했다.
그리하여 다이브마스터 과정은 정확히 한달 반.

태국 갔을때 재보니 한달 만에 13kg가 빠졌더라. 몸에 전혀 무리없이.
지금 생각해도 기적같은 일이다. 사진 속의 나는 72kg, 저땐 좀 샤프했었지…

 

K, Foued와 함께. 네덜란드에서 온 K는 나와 같이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밟는 중이었고, 프랑스인 Foued는 수중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예술가다. 저땐 많이 친해졌을 때지만 처음엔 범접하기 어려운 포스가 느껴졌었다.

K는 유독 나에게 자주 묻곤 했다. 저녁에는 뭐할 꺼냐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내일 시험 준비해야 돼”

지금까지도 이때 이야기를 기억하는 주위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
“당신이 그러니까 평소에 여자가 없는거야!!!” ㅋㅋㅋㅋ

아 나도 바보는 아닌데, 저때 정말 힘들었다고.
시험 앞두고는 영어 원서 한 1,500페이지 될라나? 그걸 하루에 12시간씩 봐야됐으니. 유럽인들에게 영어란 한국인에게 일본어 같은 것이지만, 토종 한쿡인에게 전문용어 가득한 영어원서는 정말…

거리를 뒀던 가장 큰 이유는 K의 남자친구가 항상 로밍폰으로 전화를 해댔다는 것. 그거 옆에서 보고 있으면서 그녀와 가까워진다는건 마음이 너무 불편하더라고.

길리 트라왕안을 떠나던 날 내가 탄 마차를 보고 그녀는 “Stop!”
그리고 선글래스 아래로 보이는 예의 저 미소와 함께 포옹했었지.

그 뒤로 그녀는 인스트럭터까지 땄다는 것 같은데…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다이빙을 하고 있겠지.

나도 싫은건 아니었다고… 가 아니라 고마운 것 이상이었어.
나한테 잘해준 너무도 매력적인 당신.

 

Bob과 함께.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마치고 기쁘기 짝이 없는 얼굴이다.
지금도 이때처럼 웃을 수 있을까 가끔씩 의문이 생기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고시를 통과한 기분이고,
마치 세상 모두를 다 가진 것 같았다.

세상에서 보기에는 공무원 시험이나 국가고시를 더 가치있게 평가하겠지만,
나에겐 다르다. 유난히 시험만 치르면 젬병인 내가 당당하게 노력으로 얻어낸 한 분야의 프로자격증. 그것도 백인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핸디캡을 가진 채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왜 그때 다이빙 인스트럭터를 따놓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당시에 콜롬비아행이 늦어지는 한이 있었더라도…

 

2007년 후반기, 콜롬비아로 돌아온 이후.
사기를 맞았던 Oceano에서 다이빙을 했다. 굳이 말하자면 전략적 제휴랄까…

한국사람들 여럿이 있었는데 좀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득을 취하고 싶었고
기대한 만큼의 소득이 있었다. 외딴 좋은 해변이나 포인트도 우리 마음대로 갔고,
오픈워터-어드밴스트 코스에 다이빙을 무려 15번 가까이 할 수 있었으니.

학생들 분위기도 아주 좋았고, 내 옆의 콜롬비아 아가씨 Ana는 진짜 매력적이다.
학생들이 물 속에서 불안해하면 손을 잡아주곤 했는데, “손 잡아주는 서비스”라며 일부러 무서운 척 하자는 농담을 하곤 했다.

다 좋았는데, 한국어를 아무도 못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거의 내가 다 가르치다시피 했고 (다이브마스터는 학생을 가르치면 안된다. 인스트럭터 관장하에 시범이나 보조를 할 수는 있어도) 학생들이 나처럼 사기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했고, 실제로 자격증이 계속 오지 않아서 전전긍긍했는데 나중에 전산상으로 확인해보니 다행히 모두 다이버 등록이 되어있었다.

이놈들 또 무슨 꼼수를 부린거야… 아마 우편값 아낄려고 자격증 안보내고 온라인 등록한 것 같다. 하여튼 현지인이 운영하는 다이빙 센터는 가급적 피하는게 좋다는 교훈. 이건 한국인이 운영하는 다이빙샵에도 마찬가지… 할 말은 많지만 다음 기회에. 가급적이면 유럽인이 운영하는 샵이 안전수칙도 잘 지키고 사기도 드문 편이다.

아무튼, 이때 다이빙에 입문한 학생들 중에서 지금까지 왕성하게 다이빙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보람을 느끼기에 인스트럭터를 하는 거겠지…?

 

콜롬비아 타간가. French Angel Fish.

불행히도 길리 트라왕안에서는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다이브마스터 과정중이었고 한 번은 Bob에게 카메라 가지고 다이빙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혼을 내더라고.

“마스터가 손에 카메라 덜렁덜렁 거리면서 어떻게 다른 다이버들을 돌보냐!
두 번 다시 그런거 물어보지도 마라!”

아 정말 너무 아름다운 광경을 정말 많이 놓쳤다.
다음에 길리 트라왕안으로 돌아가면 꼭 많은 사진을 남겨야지.

 

타간가에서. 길쭉한 꽃봉오리 같은 산호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게 두마리가 사랑을 나누는 중이었다!
미안, 진짜 몰랐어. 나도 찍고 나서야 무슨 일이었는지 깨달았거든.

 

 

사람 뇌를 닮았다고 해서 브레인 코랄.
타간가를 비롯한 카리브해의 특징적인 산호초다.

웬만하면 욕하고 싶지 않은데, 진짜 어떤 x신같은 여행자 하나가 태풍시즌에 타간가 가서는 육두문자 섞어가면서 “타간가 다이빙 쉣~이니 가지말라”고 포스팅을 한 이후로 대다수 한국인여행자가 타간가를 루트에서 아예 빼버린다.

그 인간 얘기 하려면 끝이 없는데, 남미를 2달에 다 돌라고 일정표를 짜서 공개하질 않나. 남들 좋다는덴 깎아내리고 자기가 간데만 최고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여(자랑하며 다니는 것과 달리 스페인어 실력이 별로라는, 당사자를 만나 본 사람들의 평) 입국을 포기한 벨리즈 같은 곳은 무려 “노예로 잡혀온 흑인들이 영어를 쓰는 보잘것 없는 나라니까 가지말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당당하게 블로그에 적어놓질 않나.

콜롬비아에서 태양여관 운영하던 때는 이 인간이 올려놓은 일정표 프린트해서 온 여행자들(워낙 포스트를 많이 해놔서 남미여행 검색하면 이 인간 블로그가 꼭 걸린다고 한다) 일정을 처음부터 다시 다 고쳐주는게 일이었다. 저 인간에게 속아서 한두달에 남미 다 돌려고 왔다가 막상 현지에 와선 눈물 뿌리는거지.
가고 싶어했던 곳 현실적인 문제로 다 들어내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병나고.

요즘은 저 인간이 사람들 모아놓고 남미여행 강연회를 한단다. 안 그래도 정상이 아닌건 남미여행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들이 생길지…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피해자일 수 있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으니 예전보다 스트레스는 덜 받는다는 것.

오픈워터 갓 따고 바다 다이빙 토탈 5~6번 해본 인간이 정보도 없이 태풍시즌에 다이빙하고는 사이트 좋다 나쁘다 가지 말아라 평가를 해?
마치 운전면허 갓 딴 초보가 레이싱 코스를 평가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얘기하면 끝이 없는데, 타간가 옆에는 타이로나 국립공원도 있다.
가디언지에서 뽑은 세계 10대 해변 중 하나. 그 인간은 애당초 가이드북을 보지도 않고 여행한 지라 뭐가 좋은지 가치가 있는지 아예 개념 자체가 없는 듯 하다.

혹시라도 이 글 보는 사람 있다면, 그리고 남미여행을 계획한다면 참고하실 것.
타간가 다이빙이 최고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남미만 여행한다면 콜롬비아 이외의 지역에서는 해변 즐기기 힘들다.
중미가 다이빙은 더 좋을지 몰라도, 거긴 미국인 드글한 휴양지 느낌임을 고려하실 것.

나는 촌스럽고, 투박하고, 배타고 조금 나가면 사람 손 별로 안 닿은 타간가가 좋다.
지금은 내가 있을 때보다 엄청 많이 상업화되었다고 하지만…


 

Box fish, 그러니까 복어.

타간가의 다이브마스터 중 스킬이 좋은 친구들은 가끔 가시복을 잡아서 깜짝쇼를 보여주는데, 공처럼 부풀어오르는 모습은 가히 귀여움의 극치다.
당사자인 복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겠지만…

나는 다이빙하면서 수중생물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사실 다이버로써 존경하는 Bob 같은 경우도 대왕오징어를 위협하여
먹물을 쏟아내게 하는걸 보고는 실망한 감이 없지 않다.

한국에서는 다이빙하면서 어패류 채취가 거의 관례처럼 되어있는데, 소주 안주로 약간이면 모르겠으나 공기통을 메고 들어가서 싹 쓸어버리면 해양생물의 멸종까지도 능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외국 다이버와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한국 다이버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당당하게 “한국에는 한국만의 다이빙 문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스트럭터를 한 명 보았다.

당당한 논리라 딱히 틀린 말로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문제의 발언을 한 인스트럭터는양식장 부근에서 몇 마리 제한 안에서 채집을 허용한다고 했다.

 

랍스터. 이 녀석은 사진만 찍히고 무사했는데 로베르토라는 인스트럭터가
한 녀석의 더듬이를 잡고 놀다가 그만 한쪽 더듬이가 쑤욱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시 붙여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하나?

우리에게는 재미지만 수중생물에게는 목숨의 위협이라는거.
자전거 페달형 다이버가 킥을 하면서 바닥의 모래를 사방팔방으로 퍼트리면
산호가 모래에 덮여 햇빛을 못 보고 죽어버리고 만다.

사실 환경을 보호하려면 다이빙 자체를 안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심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니까…

간만에 지난 날을 추억하며 행복한 포스팅.
2007년 이후로 나의 다이빙 로그북은 150회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진 2011년…
그간 폭풍우 속을 헤집듯이 살아왔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