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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들을 적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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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싫은데 치앙마이는 좋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일본인 아저씨와 태국인 아주머니가 함께 운영하는 방 20개 짜리 콘도다. 에어컨 등 주방을 제외한 풀옵션 트윈룸이 월 20만원이라는 기막힌 가격!

더 경악할 것은 여기보다 더 저렴하거나 더 좋은 시설을 갖춘 숙소도 많다는 것이다. 물론 치앙마이 시내에서 조금 더 외곽으로 나가야 하지만…

너무 숙소가 좋아서 인터넷에라도 소개하고 싶다가도 머리 속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는 것은 출판에 준하는 행위라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기 때문에. 남미처럼 멀고 특이한 곳에도 벼라별 사람들이 다 오는데 태국이라면 정말 아무나 접근할 수 있으니 자칫 한국 망신이 될까봐 하는 우려가 하나, 그리고 가끔은 나만 혼자 알고 있는 숙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하나. (나중에 또 오고 싶은데 빈 방이 없다거나 한국인들 버글, 하면 내가 좋아하는 지금 분위기는 없어져 버릴테니까.)

주로 50대 이상 은퇴한 일본노인들이 쉬러 오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웬걸 바로 옆방에 내 또래 일본아가씨가 머물고 있네. 태국 아주머니와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이 처자가 사용하고 있는 주인아저씨의 자전거를 넘겨받게 되어 오늘은 잠시 둘이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람 사는 모습은 정말 어디든 똑같나 보다.

이 처자는 일본인 아저씨들이 하도 귀찮게 해서 주로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단다. 어디서 왔냐, 나이가 몇이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어쩌면 그리 한국과 똑같을까! 말이라도 한 아저씨랑 잠시 섞으면 그 대화 내용은 다음날 그 콘도의 모든 거주자들이 알고 있게 되고.

와! 한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일본도 그렇구나, 그래도 일본사람들은 한국인처럼 다 같이 밥해먹고 다같이 놀러다니고 다같이 술먹고 그러진 않지 않냐고 반박(?)해서, 한국사람들이 일본사람들보다 조금 더 귀찮게 한다는 것 비슷하게 결론이 났다.

흠흠. 써놓고 보니… 콜롬비아에서 한국인 숙소까지 운영했던 내가 이런 글을 쓰면 안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나 역시 혼자 다닐 때는 한국인들이 모이는 숙소를 일부러 피하게 됨은 어쩔 수가 없다.

초면에 개인적인 인적사항을 다 파악하려 들고 나이와 학벌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서열놀이를 왜들 그리 즐기는 걸까. 여행 좀 했다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친구들 모아놓고 여행이야기 하면서 술이나 밥 얻어먹는 부류도 꽤 있는 것 같은데, 난 자연스럽게 발생하지 않은 강요된 친분과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는 느낌이 굉장히 불편하다. (세상 모든 일에는 댓가가 따르지 않던가. 콜롬비아에서는 직업이기도 했으니 사람들과 열심히 어울렸지.)

하여튼, 그 일본인 처자는 다음주에 귀국할 계획이라는데. 치앙마이에는 여러 번 왔지만 boring 해서 빨리 귀국하고 싶다고 한다. 나에게 치앙마이와 태국에 대한 느낌을 묻길래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태국은 싫은데 치앙마이는 좋다.”

콜롬비아 수준(남미도 페루나 볼리비아 같은 곳은 현지인들 진짜 칙칙하다)은 아니지만, 방콕이나 남부에 비해 굉장히 부드럽고 잘 웃는 치앙마이 사람들. 개인적으로 동남아에서 이 정도로 사람이 편안한 지역은 처음인데, 일본인 처자랑 이야기 해보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여행자들이 태국에 대해 느끼는 공통점이 있더라.

전반적인 태국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태국인들은 가끔씩 매우 불손하고 공격적이다.

2007년에는 대낮에 카오산 한 복판에서 “Sex, Wow!”를 외치는 매춘부에게 팔을 잡혀 본 적이 있는 나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여자가 갑자기 내게 와서는 바지를 벗기려는 바람에 기절초풍 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밤이고 인적이 드문 길이기나 했지.

인도에서는 현지인과 시비가 붙으면 시시비비를 가려서 가능한 외국인 편을 들어주는 편인데, 태국에서는 현지인들이 시비 붙은 외국인을 집단구타 하기 쉽다는 얘기도 있다.

치앙마이에 온지 어느덧 2주가 가까와지는데, 대체로 친절한 치앙마이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 건물 앞을 기웃거렸다가 “No! Get out!”을 한 번 당한 적이 있다. 2007년에 왔을 때는 방콕에서 이런 상황을 여러번 당하고 목격도 했었는데. 솔직히 손에 지도 들고 차림새 보면 외국인 뻔한 데 손님으로 온 사람들에게 이런 식인건 너무 무례한 거 아닐까? (콜롬비아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지. 웃으며 다가와서 세뇨르, 로 시작해서는 여기는 금지구역이라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정도로 끝났을 텐데.)

현지어도 배우고 싶은데, 태국어는 인간적으로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중국어보다 하나 더 많은 5성조에다, 보기만 해도 두통이 오는 태국문자를 새로 배워야 한다. 알파벳을 그대로 쓰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언어로 평가받는 인도네시아어에 비하면 그저 배울 엄두가 안날 뿐인데.

하여튼 이 일본처자도 (나처럼) 인도네시아가 참 좋다고 한다. 왜 인도네시아가 좋은가 얘기하다 보니 나는 자연을 꼽고, 그 처자는 그냥 이미지가 좋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예전에 사람들에게 해오던 이야기가 이거였다.

“인도네시아 가보니, 자연도 좋고 물가도 싸고 음식도 맛있고 – 사람 빼고 다 좋더라!”

결국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나 현지인 수준은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 관광지에서 만나는, 영어를 잘 하고 늘 귀찮게 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영어를 대체로 못하고 우악스럽지만 덜 귀찮게 하는 태국인들. 그렇게 보면 세상 어디나 무조건적인 천국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겠지.

하여튼, 지금까지 느낌은 딱 이것이다. “태국은 싫지만 치앙마이는 좋다.” 나도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엔 저 일본 처자처럼 “치앙마이는 boring한 곳”이라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태국현지인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스페인어가 먼저 떠오른다.

“부에나스 따르데스”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아, 여기선 태국어를 써야하지 하며 버벅대다가 “싸왔디 크랍”, “그라시아스” 하려가다 “컵쿤 크랍”.

콜롬비아를 떠나올땐 섭섭보다도 시원하다는 느낌이었는데. 가끔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아무래도 중남미는 무조건 다시 가게 될 것 같다.

그게 몇년 후가 될진 모르지만.
그리고 또 다시 그곳에서 살 생각은 전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