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5, 2011 - Uncategorized    4 Comments

스쿠버다이빙 2005~2007

 주위사람들중 몇몇은 내가 굉장히 밝고 낙천적인 사람인 줄 안다.
하지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거의 웃을줄 모르는 어둠투성이 인간이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으니.
(지금도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무의식 중에 표정이 얼어버린다.)

적잖은 해를 거듭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은 성장을 했지만. 가장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것이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다는 것, 그것도 다이브마스터까지.
한 분야의 프로가 될 때까지 나 자신을 불사른 때가 있었다는 것.

 

다이빙을 처음 배우고 시작했던 이집트 다합 2005.

특이하게도 폴란드 국적인 인스트럭터,
모니카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그녀는 패닉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나를 다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내 손을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댔다. 당황도 잠시, 어머니의 품속인양
거짓말 같이 진정되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를 Witch라고 부르곤 했다. 탁월한 직관력과 거침없는 성격,
그리고 우리는 같은 천칭자리라며 내 삶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지.

지금은 독일에서 예쁜 아기를 낳고 잘 살고 있다는 그녀.
언젠가는 그때 그 시절 다합의  이야기들을 써 볼 생각이다.

 

인도네시아 롬복섬의 새끼섬, 길리 트라왕안에서.

인도네시아 KOICA로 발령받은 후배의 추천으로
아무 생각없이 왔던 그곳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콜롬비아 타간가에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레스큐다이버와 다이브마스터 코스를 다시 반복해야만 했고, 금전적인 문제보다도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좋게 된 것일수도 있다. 인생공부도 그러하거니와,
어쨌든 프로과정을 두번이나 반복했으니.

두 달 가까이 머무느라 자전거를 샀는데, 다들 이쁘다며 탐을 냈다. 떠날 때 되면 팔라는 사람이 꽤 많을 정도로 나의 노란색 자전거는 길리 트라왕안에서 명물이었다. 내가 아니라. (:

 

다이브마스터의 전통, 스노클로 술 마시기.
뒤에서 술을 부으려는 친구가 나의 선생님이었던 Bob.
매사에 엄격하면서도 은근한 정이 느껴지는 그는 진정한 프로페셔널…!

과정 마지막에 다달아 나 말고 전부 백인인, 왠지 어울리기 힘든 분위기에
지쳐갈 무렵, 나를 챙겨주지 않겠지 하는 기우를 했었다.

사진을 볼때마다 그때의 분위기가 생생하다. 다들 박수치면서 ‘다니’를 환호하던.
중간에 한번 토할 뻔 한걸 참고 끝까지 다 마셨다. (: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한번 방문에 1달씩 밖에 체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간에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다녀와야 했다.
그리하여 다이브마스터 과정은 정확히 한달 반.

태국 갔을때 재보니 한달 만에 13kg가 빠졌더라. 몸에 전혀 무리없이.
지금 생각해도 기적같은 일이다. 사진 속의 나는 72kg, 저땐 좀 샤프했었지…

 

K, Foued와 함께. 네덜란드에서 온 K는 나와 같이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밟는 중이었고, 프랑스인 Foued는 수중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예술가다. 저땐 많이 친해졌을 때지만 처음엔 범접하기 어려운 포스가 느껴졌었다.

K는 유독 나에게 자주 묻곤 했다. 저녁에는 뭐할 꺼냐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내일 시험 준비해야 돼”

지금까지도 이때 이야기를 기억하는 주위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
“당신이 그러니까 평소에 여자가 없는거야!!!” ㅋㅋㅋㅋ

아 나도 바보는 아닌데, 저때 정말 힘들었다고.
시험 앞두고는 영어 원서 한 1,500페이지 될라나? 그걸 하루에 12시간씩 봐야됐으니. 유럽인들에게 영어란 한국인에게 일본어 같은 것이지만, 토종 한쿡인에게 전문용어 가득한 영어원서는 정말…

거리를 뒀던 가장 큰 이유는 K의 남자친구가 항상 로밍폰으로 전화를 해댔다는 것. 그거 옆에서 보고 있으면서 그녀와 가까워진다는건 마음이 너무 불편하더라고.

길리 트라왕안을 떠나던 날 내가 탄 마차를 보고 그녀는 “Stop!”
그리고 선글래스 아래로 보이는 예의 저 미소와 함께 포옹했었지.

그 뒤로 그녀는 인스트럭터까지 땄다는 것 같은데…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다이빙을 하고 있겠지.

나도 싫은건 아니었다고… 가 아니라 고마운 것 이상이었어.
나한테 잘해준 너무도 매력적인 당신.

 

Bob과 함께.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마치고 기쁘기 짝이 없는 얼굴이다.
지금도 이때처럼 웃을 수 있을까 가끔씩 의문이 생기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고시를 통과한 기분이고,
마치 세상 모두를 다 가진 것 같았다.

세상에서 보기에는 공무원 시험이나 국가고시를 더 가치있게 평가하겠지만,
나에겐 다르다. 유난히 시험만 치르면 젬병인 내가 당당하게 노력으로 얻어낸 한 분야의 프로자격증. 그것도 백인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핸디캡을 가진 채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왜 그때 다이빙 인스트럭터를 따놓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당시에 콜롬비아행이 늦어지는 한이 있었더라도…

 

2007년 후반기, 콜롬비아로 돌아온 이후.
사기를 맞았던 Oceano에서 다이빙을 했다. 굳이 말하자면 전략적 제휴랄까…

한국사람들 여럿이 있었는데 좀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득을 취하고 싶었고
기대한 만큼의 소득이 있었다. 외딴 좋은 해변이나 포인트도 우리 마음대로 갔고,
오픈워터-어드밴스트 코스에 다이빙을 무려 15번 가까이 할 수 있었으니.

학생들 분위기도 아주 좋았고, 내 옆의 콜롬비아 아가씨 Ana는 진짜 매력적이다.
학생들이 물 속에서 불안해하면 손을 잡아주곤 했는데, “손 잡아주는 서비스”라며 일부러 무서운 척 하자는 농담을 하곤 했다.

다 좋았는데, 한국어를 아무도 못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거의 내가 다 가르치다시피 했고 (다이브마스터는 학생을 가르치면 안된다. 인스트럭터 관장하에 시범이나 보조를 할 수는 있어도) 학생들이 나처럼 사기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했고, 실제로 자격증이 계속 오지 않아서 전전긍긍했는데 나중에 전산상으로 확인해보니 다행히 모두 다이버 등록이 되어있었다.

이놈들 또 무슨 꼼수를 부린거야… 아마 우편값 아낄려고 자격증 안보내고 온라인 등록한 것 같다. 하여튼 현지인이 운영하는 다이빙 센터는 가급적 피하는게 좋다는 교훈. 이건 한국인이 운영하는 다이빙샵에도 마찬가지… 할 말은 많지만 다음 기회에. 가급적이면 유럽인이 운영하는 샵이 안전수칙도 잘 지키고 사기도 드문 편이다.

아무튼, 이때 다이빙에 입문한 학생들 중에서 지금까지 왕성하게 다이빙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보람을 느끼기에 인스트럭터를 하는 거겠지…?

 

 

콜롬비아 타간가. French Angel Fish.

불행히도 길리 트라왕안에서는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다이브마스터 과정중이었고 한 번은 Bob에게 카메라 가지고 다이빙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혼을 내더라고.

“마스터가 손에 카메라 덜렁덜렁 거리면서 어떻게 다른 다이버들을 돌보냐!
두 번 다시 그런거 물어보지도 마라!”

아 정말 너무 아름다운 광경을 정말 많이 놓쳤다.
다음에 길리 트라왕안으로 돌아가면 꼭 많은 사진을 남겨야지.

 

타간가에서. 길쭉한 꽃봉오리 같은 산호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게 두마리가 사랑을 나누는 중이었다!
미안, 진짜 몰랐어. 나도 찍고 나서야 무슨 일이었는지 깨달았거든.

 

 

사람 뇌를 닮았다고 해서 브레인 코랄.
타간가를 비롯한 카리브해의 특징적인 산호초다.

웬만하면 욕하고 싶지 않은데, 진짜 어떤 x신같은 여행자 하나가 태풍시즌에 타간가 가서는 육두문자 섞어가면서 “타간가 다이빙 쉣~이니 가지말라”고 포스팅을 한 이후로 대다수 한국인여행자가 타간가를 루트에서 아예 빼버린다.

그 인간 얘기 하려면 끝이 없는데, 남미를 2달에 다 돌라고 일정표를 짜서 공개하질 않나. 남들 좋다는덴 깎아내리고 자기가 간데만 최고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여(자랑하며 다니는 것과 달리 스페인어 실력이 별로라는, 당사자를 만나 본 사람들의 평) 입국을 포기한 벨리즈 같은 곳은 무려 “노예로 잡혀온 흑인들이 영어를 쓰는 보잘것 없는 나라니까 가지말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당당하게 블로그에 적어놓질 않나.

콜롬비아에서 태양여관 운영하던 때는 이 인간이 올려놓은 일정표 프린트해서 온 여행자들(워낙 포스트를 많이 해놔서 남미여행 검색하면 이 인간 블로그가 꼭 걸린다고 한다) 일정을 처음부터 다시 다 고쳐주는게 일이었다. 저 인간에게 속아서 한두달에 남미 다 돌려고 왔다가 막상 현지에 와선 눈물 뿌리는거지.
가고 싶어했던 곳 현실적인 문제로 다 들어내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병나고.

요즘은 저 인간이 사람들 모아놓고 남미여행 강연회를 한단다. 안 그래도 정상이 아닌건 남미여행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들이 생길지…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피해자일 수 있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으니 예전보다 스트레스는 덜 받는다는 것.

오픈워터 갓 따고 바다 다이빙 토탈 5~6번 해본 인간이 정보도 없이 태풍시즌에 다이빙하고는 사이트 좋다 나쁘다 가지 말아라 평가를 해?
마치 운전면허 갓 딴 초보가 레이싱 코스를 평가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얘기하면 끝이 없는데, 타간가 옆에는 타이로나 국립공원도 있다.
가디언지에서 뽑은 세계 10대 해변 중 하나. 그 인간은 애당초 가이드북을 보지도 않고 여행한 지라 뭐가 좋은지 가치가 있는지 아예 개념 자체가 없는 듯 하다.

혹시라도 이 글 보는 사람 있다면, 그리고 남미여행을 계획한다면 참고하실 것.
타간가 다이빙이 최고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남미만 여행한다면 콜롬비아 이외의 지역에서는 해변 즐기기 힘들다.
중미가 다이빙은 더 좋을지 몰라도, 거긴 미국인 드글한 휴양지 느낌임을 고려하실 것.

나는 촌스럽고, 투박하고, 배타고 조금 나가면 사람 손 별로 안 닿은 타간가가 좋다.
지금은 내가 있을 때보다 엄청 많이 상업화되었다고 하지만…


 

Box fish, 그러니까 복어.

타간가의 다이브마스터 중 스킬이 좋은 친구들은 가끔 가시복을 잡아서 깜짝쇼를 보여주는데, 공처럼 부풀어오르는 모습은 가히 귀여움의 극치다.
당사자인 복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겠지만…

나는 다이빙하면서 수중생물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사실 다이버로써 존경하는 Bob 같은 경우도 대왕오징어를 위협하여
먹물을 쏟아내게 하는걸 보고는 실망한 감이 없지 않다.

한국에서는 다이빙하면서 어패류 채취가 거의 관례처럼 되어있는데, 소주 안주로 약간이면 모르겠으나 공기통을 메고 들어가서 싹 쓸어버리면 해양생물의 멸종까지도 능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외국 다이버와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한국 다이버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당당하게 “한국에는 한국만의 다이빙 문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스트럭터를 한 명 보았다.

당당한 논리라 딱히 틀린 말로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문제의 발언을 한 인스트럭터는양식장 부근에서 몇 마리 제한 안에서 채집을 허용한다고 했다.

 

랍스터. 이 녀석은 사진만 찍히고 무사했는데 로베르토라는 인스트럭터가
한 녀석의 더듬이를 잡고 놀다가 그만 한쪽 더듬이가 쑤욱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시 붙여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하나?

우리에게는 재미지만 수중생물에게는 목숨의 위협이라는거.
자전거 페달형 다이버가 킥을 하면서 바닥의 모래를 사방팔방으로 퍼트리면
산호가 모래에 덮여 햇빛을 못 보고 죽어버리고 만다.

사실 환경을 보호하려면 다이빙 자체를 안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심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니까…

간만에 지난 날을 추억하며 행복한 포스팅.
2007년 이후로 나의 다이빙 로그북은 150회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진 2011년…
그간 폭풍우 속을 헤집듯이 살아왔었구나.

Sep 3, 2011 - Uncategorized    2 Comments

나는 신들의 섬으로 간다

1. 태국에서 보낸 시간이 지난번 방문까지 합쳐 5개월이 넘어간다.

태국은 내게 있어 정말 특이한 곳이었다. 방문전에도 이미 어떤 곳일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예상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곳…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못 느끼는 곳이 태국이지만, 가까운 거리와 저렴한 물가를 목적으로 했다고 봐야겠다.

비용 적게 들고 조용히 글이나 쓰다 가려고 온 것이지만… 지금 심정은 역시 사람은 끌리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거다. 빌어먹을 마일리지로 조금만 더 멀리 갈 수 있었다면.
 

2. 그렇다고 이번 태국여행에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생은 끝없는 공부라 하지 않던가…

개인적으로도 한국쪽도 사정이 안좋았는데 이래저래 고비가 되는 시기를 태국에서 잘 넘긴 것 같다. 생각도 못했는데 여기 빠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기자신이 바로 서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위 눈치에 내 앞길이 휘둘린다면 그것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인생. 그리고 인생이란 어차피 타이밍과 인연의 연속, 앞으로는 연연하지 않고 관망하련다.

이제 사회 어디에 나서는 일이 있게 되더라도 적잖은 나이와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부족한 것도 너무 많다.

죽을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3.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가고 싶어했던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시작한 후, 여행 반 해외생활 반 총 6년의 시간을 국외에서 보냈다. 이제 뭘 봐도 감동없고 매력도 느낄 수 없는 내가 된 지 오래.

그런 내가 여행지로 매력을 느끼는 곳이 바로 인도네시아… 2007년에 다이브마스터 하느라 롬복에 한달 반 있었지만, 언제고 돌아가리라 더 많은 곳을 보리라 했던 다짐을 실천하는데 4년이나 걸렸네.

개인적으로 여행경험을 쌓으면서 “사람과 자연” 외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그것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줬던 곳이 남미… 

스페인어 하나로 25개국에서, 도시의 엘리트부터 아마존 부족이나 카리브해의 원주민과도 대화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라틴아메리카다. 그런 경험을 하고나니 어디를 가도 현지인과 소통할 수 없고 관광지의 어설픈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이 여행의 매력을 떨어지게 만들었다.

언젠가 현지어를 배워서 여행하겠노라 꿈꿔왔던 것이, 러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 러시아는 구소련이었던 동유럽 지역과 중앙아시아에서 다 통용되고, 인도네시아어는 말레이시아를 포함 2억 5천만의 인구가 사용한다.

인도네시아의 살아있는(쓰나미와 화산폭발로 유명한;) 자연은 말할 필요도 없고. 쉽다고 소문난 인도네시아어를 배워 사실상 다른 종족 다른 나라라고 볼 수 있는 인도네시아 큰 섬들을 여행하는 것. 수마트라, 자바, 발리, 롬복, 플로레스, 코모도, 티모르에 보루네이, 그리고 말레이시아까지…

발리행 티켓은 이미 손에 넣었다. 인도네시아 사전과 자료를 찾아다니면서 벌써부터 흥분이 가시질 않는다. 정말 오랫만에 한 사람의 여행자로 돌아왔다…!!
 

4. 이번에 내가 나온 목적은 분명하다. 물가 비싸고 번잡스러운 한국을 잠시 떠나 첫 단행본을 성공적으로 집필해 오겠다는 것.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태국에서 보낸 시간들 속에서 배운 것은, 나는 어딘가 조용히 파묻힐때 글이 잘 써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거다.

인도, 이집트, 그리고 빠이에서 다시 만난 후배가 “예전 여행할 때의 형은 늘 사람을 끌고 다녔고 빛이 났다”며 의기소침하고 어두워진 내 모습을 안타까워 하더라. 형은 여행 다니며 글 쓰는게 더 좋을거라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활력으로 글도 더 잘써질 거라고.

처음엔 여행과 글쓰기를 연결해서 생각하는게 쉽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니 여행 다닐때의 나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쓰던 글중에는 인터넷 카페 앉은 자리에서 4~5시간 동안 바로 써버린 경우도 적지 않고. (지금 이 글도 카페에서 스마트폰 엄지손가락 두개로 후루룩 쓰는 중)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답은 뻔한 것. 처음부터 내가 끌리고 가고 싶어하던 곳으로 가는게 맞았다. 태국은 현재 상황에서 이득을 취하러 온 곳이지만, 어차피 지금까지는 인도네시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그리고 인연대로 가는 법.

지금까지 나도 열심히 살았다. 영어, 스페인어는 어디가서 “배우느라 고생했겠네” 소리 들을 수준은 되는데, 이제 세번째 외국어로 인도네시아어에 도전한다. 말을 배우는 동안 답답해할 걱정보다 말문이 터질 때의 희열이 먼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첫달은 발리. 우붓에서 영감 좀 얻고, 한 곳에 있다가 지루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발리는 한국에서만 신혼여행지로 알려져 있지 사실 배낭여행 다니는 사람이 더 많다. 백패커로 다니는 발리 정보를 앞으로 자주 소개할 예정)

두 번째 달은 롬복에서 보낼 예정. 그곳에는 앞으로 계획 중인 책의 소재가 있기도 하다. 궁금한 분들이 계시겠지만 앞으로 베일은 하나씩 벗겨질 터.

그 다음은? 계획은 다 있지만 일단은 책부터 마무리해야겠다. 인생이 뭐 어디 계획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드디어, 마침내 인도네시아로!!

2011년 9월 10일 방콕에서 발리로 갑니다. (:

Aug 19, 2011 - Uncategorized    3 Comments

팬덤이라는건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예전에 제가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누군가에 대한 비판글이 엄청난 화제가 되어 당사자의 팬들에게 댓글 등 융단폭격을 맞은 일이 있습니다.

글 두개에 댓글이 도합 천개, 글 쓴지 3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스팸이 달려서 블로깅이 힘들 정도구요. (정확히는 블로깅에 넌더리가 난다고 해야겠지요;;)

한창 피크 때는 제가 비판했던 분이 TV에 출연하면서 하루에 5만명씩 들어오더라구요. 진짜 계정을 폭파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자세한 배경까지 아시는 분은 드뭅니다만, 그 당시 제 글이 좀 과격하게 쓰여졌던 데는 이유가 있었고(클리앙 버전은 많이 다듬어진 것이구요) 다른 사람들도 실상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쓰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모르고 쓴 글이거든요.

개인적으로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제 의견에 동조하던 아니던 댓글이 초장부터 무례하게 나오면 맞받아치는 성격입니다만…

워드프레스 넘어오면서 댓글에 이메일을 받고, 문제의 글 2개에는 댓글을 더 못 달게 했더니 소위 ‘악플’들 확 줄었는데, 이제는 다른 글들 찾아다니면서 또 댓글을 남기는군요.

요즘은 너무 상스런 욕 쓴것만 아니면 댓글 등록해주는데, 오늘은 또 무슨 대표이사라는 분이 와서 또 딴지를…

나도 해외생활 해봤고 지금은 회사운영하는 사람인데, 당신 글 읽어보니 당신글도 (당신이 비판하는 누구처럼) 편협하고 과시욕 쩌는군.

뭐 이런 투를 반말로 써놨는데, 이게 딱 그분 팬들 스타일입니다. 하도 많이 당해서(?) 척 보면 감이 오죠.

(팬심이란게 참 무섭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누군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이야기가 들리면, 그냥 이성을 잃고 달려듭니다. “당신은 xxx님처럼 지구평화를 위해 뭐 하나라도 해본 것이 있느냐?”

이분의 경우는 좀 놀랐던게, 실명에 자기 이메일과 회사홈페이지까지 등록하고 갔더군요.

제가 그분 입장이라면 그렇게 경솔한 짓은 하지 않을텐데 말이죠… 전하진/이찬진 대표님처럼 인터넷을 사용해도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사용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분이 운영하시는 곳이 구멍가게급 레벨이라 하더라도 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저렇게 함부로 남의 블로그에서 반말 써가며 댓글 배설하는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팬이라도 자기 위치나 입장 생각하면서 딴지를 걸더라도 걸어야죠…)

인터넷에 글들 보면 뭐 제가 비판글 써서 “문제의 그분”을 까서 좀 떠볼려는 의도 아니었냐, 이런 분들까지 있는데. 저는 오히려 글 쓰고 나서 잃은 것이 더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데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 인한) 저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줬기 때문이죠. (콜롬비아에서 숙소 운영할 때도 “글 보면 되게 공격적인 분인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인상이 좋으시네요.” 소리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_-;)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문제의 그분 관련에 대해서는 제 원글들을 수정하지 않은 채로 놔두고 있고(책임진다는 의미),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굉장히 조심하는 편입니다. (당연히 당사자도 제 글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네이버 연관검색어가 삭제되는거 여러번 봤거든요.)

어쨌든, 문제의 그분은 이제 한국판 TED 강사로도 활동하실 계획이고 오늘도 대학생들에게 닮고 싶은 인물 상위권…

종교/아이돌 등 무언가에 빠져들면 이성적인 사고란 힘들어지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이 많은 욕을 먹으면서 정력을 소비해 가면서 그런 글들을 써야만 했나.

글의 태도야 지적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A를 A라고 얘기하려는데 욕 하면서 B가 맞다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니…

대중에겐 사실 따위보다 그냥 현실을 잠깐 잊게 해주는 판타지가 필요한 것이다 – 이 말이 맞는 걸까요.

여러가지로 회의가 듭니다.

Aug 17, 2011 - Uncategorized    5 Comments

빠이에 안착하다

1. 이 블로그에도 구독자가 있더라. 16명이나… 이거참 감사라도 드려야 할지;

어쨌든 내 근황을 궁금해하거나 이 블로그 글을 재밌어 하시는 분들이 있는거니 가끔씩이라도 글을 쓰는게 좋겠다.

(보고만 계시지 말고 코멘트도 남겨주세요! 그래야 글이 더 자주 올라옵니다. ^^;)

 

2. 돌이켜 보니 글이 뜸한 동안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다른 나라 다른 여행지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둘이나 빠이 길거리에서 만났고, 묵던 숙소에 도둑이 들어 현금과 핸드폰 등을 도둑맞고 다른 숙소로 옮기고 등등.

경찰서 다니고 한동안 정신이 없었지만, 도둑놈이 아이패드나 노트북을 가져가지 않은 건 지금 생각해도 감사할 일이다. 이런 시골에서 장물처리하는 것이 힘들다는게 이유였겠지만, 덕분에 정말 좋은 숙소로 옮길 수도 있었고. 태국이란 곳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됐고.

남미에 있을 땐 가깝고 물가 싸고 안전한 천국, 동남아를 놔두고 남미 같이 위험한 곳에서 뭐 하는 짓이냐 싶었는데 막상 동남아도 나름 외국인으로써 지내기 뻑적한 일들이 있기 마련.

개발도상국이면 어디나 불합리한 점이 많지만, 동남아도 안전문제 무시할 수 없다. 그중 가장 신경쓰이는 건 현지인의 집단폭행 문화. 여행괴담인 줄만 알았는데 수많은 목격자들과 이야기 나눈 후인 지금은 여기서 현지인을 상대할 땐 각별히 조심하고 있다.

한마디로 동남아에서 현지인과 외국인 사이에 시비가 붙으면, 잘잘못에 상관없이 근처의 모든 현지인이 달려들어 외국인에게 다구리를 놓는다. 카오산에서는 이렇게 휘말려 얻어맞는 백인들 비명소리가 밤마다 꽤 자주 들린다고.

현지인을 존중하고 예의있게 다니는 것이 내 여행자세지만, 솔직히 사람 일을 모르니까. 인도나 특히 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나도 현지인과 누가 목소리 더 큰지 겨루듯 싸웠던 적이 있으니. 굳이 비유하자면 남미에서 권총강도를 만날 확률이나(대부분 칼이 사용되지 여행자가 권총강도를 만나는 확률은 매우 적다) 동남아에서 현지인과 시비 붙어 집단폭행 당할 확률이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까나?

 

3. 최근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운동 후면 두통이 매우 심해져 쓰러지다시피 하는데,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완전 회복까지 몇 시간이 걸린다.

치앙마이에선 무에타이 같이 격렬한 운동도 잘 하곤 했는데, 결국 빠이에서 머문 한달반 정도의 시간 동안 몸에 문제가 생겼단 결론이다.

빠이 와서는 무에타이 다니지 못했고 초반에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신경 써서 몸관리 하려고 모든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6km를 걷거나 뛰고 있는데 이것도 두통 때문에 쉽지가 않다.

간호사 출신인 후배 하나는 가능하면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는데, 지금 내 상황에서 귀국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인터넷 신공으로 조사를 좀 해보니 저혈당 증세인 것 같다. 물론 정확한 건 나중에 검사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워낙 탄산음료 등 당분과 햄버거 등의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인데, 생각해보니 태국 와서부터는 살 뺀다고 음료도 다이어트 붙은 것만 먹고, 원체 양이 적은 태국음식만 먹어왔으니 당분 공급이 제대로 안됐을 수가 있다.

바꿔 말하자면, 소위 “안 먹는 다이어트”류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도. 여자들은 대부분 살을 빼려면 안 먹는게 최고라고들 하는데, 갑작스럽게 식생활이 바뀌고 먹는 양이 줄면 몸에 그만큼 무리가 오게 된다. (요즘 즐겨보는 다음 웹툰 “다이어터” 보면 이런저런 내용 참고할 게 많더라. 웹툰 자체도 재미있고.)

아픈 원인을 알기 위해 식이요법 등 여러가질 찾아봤는데, 각자 체질에 맞춰서 먹는게 제일이지 무조건 채식류가 좋은 것도 아니더라. 내 경우는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해줘야 하는 체질인데 지금은 아파서 운동을 잘 할 수 없으니…

소금을 적게 먹어도 병, 많이 먹어도 병. 당분이 너무 많아도 병, 너무 적어도 병. 음식은 계속 관리 조절해야 하면서 밸런스를 맞춰야 할텐데 솔직히 어떻게 이런걸 평생 동안 할 수가;

하여튼 다른거 다 필요없다. 역시 건강이 제일이다.

이거 블로그에 적었다가 또 “다니 시한부 생명이더라” 따위의 루머가 돌아다니게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네. 한두번 당했어야지… 사람들이 만들어낸 내 루머들 들어보면 진짜 기가 막힌다. 이건 다음 번 포스트에.

 

4.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 이 재미.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방 안에는 인터넷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 마침 옆방이 비어 그리로 옮기고 랜선 공사하고 나니 이렇게 편리할 수가.

이제 인터넷이 항상 되는 환경이니 굳이 커피숍 등을 자주 갈 필요도 없고, 블로깅 등도 더 자주 할 수 있겠다.

실내공간도 더 넓어졌고… 환경이 더 좋아졌으니 글도 더 잘 써지겠네.

다른 무엇보다 예전처럼 열정적인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끔은 정말 스스로가 스러진 불꽃처럼 느껴져서…

처음 배낭을 메고 런던 땅에 발을 디뎠을 때의 감동, 그런건 이제 두번 다시 느낄 수 없겠지.

Jun 16, 2011 - Uncategorized    No Comments

치앙마이에서 빠이로

1. 치앙마이는 나 같은 사람에겐 참 힘든 곳이었다… 술과 여자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일지 모르나.

어느날 문득 내 주위에 “How much?”를 알아들을 수 있는 태국인의 숫자가 한 손으로 채 꼽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내가 묵는 숙소는 일본노인들로 가득하다. 그런걸 깨닫고 나선 밤마다 혼자서 맥주 마시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영어로 주절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

여지껏 여행다닌 곳 중에서 영어가 이렇게 안 통하는 곳은 처음인듯. 내가 아무리 혼자 여행 잘 다니고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아한다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하잖아…

 

2. 무에타이를 다니면서 친구라도 사귀어볼 생각이었는데, 한 번 가면 발이 팅팅 부어오니 자주 갈 수가 없다. 무에타이 킥은 발목과 정강이 부근으로 차는데, 몸에 밴 태권도 습관 때문에 자꾸 샌드백을 발등으로 차니 걷기 힘들 정도로 발이 붓는거다.

태권도 배울땐 대부분 가벼운 미트를 차지 패드나 샌드백은 잘 안 차는데, 무에타이 발차기가 다리를 들어 온 몸을 회전하며 차는 거라면 태권도 돌려차기는 채찍처럼 가속을 붙여 발등으로 후려치는거다. 모든 파괴력이 작은 발등에 모이니 아픈게 당연.

정강이로 차면 애매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아프거나 하지 않다. 한 마디로 무에타이 하려면 특별히 어딜 단련하고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발등단련은 엄청난 시간이 필요. 여지껏은 미트나 차봐서 괜찮았는데. 오른발차기는 이제 무에타이식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잘 안붓는데 왼발이 아직 잘 안된다.

 

3. 하여튼 그래도 안면 튼 일본친구와(자기 말로는 미국에서 UFC격투기 선수들 3명 닥터했다던데 진짜일까?;)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나보고 왜 나가서 여자 안 만냐난다. 새벽 2시쯤 길거리 나가보면 그날 손님을 구하지 못한 매춘부들 널렸고 매우 저렴하게 딜 -_- 을 할 수 있다고.

좀 어이가 없어서. 난 태국여자를 만나게 되더라도 정상적으로 만나고 싶고 대화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꼭 말이 통해야만 대화가 되는건 아니지 않냐고 오픈마인드를 가지라 하네. 태국에 있는 모든 외국인 남자가 그러는데 왜 나만 안 그러냐고.

내가 태국에 처음 오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졌던게 이런 부분인데, 이상하게 태국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여행자들은 – 좀 노골적으로 말해 – 질이 낮다. 여행자 숙소나 거리에서 만나도 눈인사도 잘 안하고 매춘이나 마약거리를 찾아다니는 비율이 상당히 많다.

그런 성향과 히피스러움이 싫어 좀 뭔가 열심히 해보려는 애들하고 어울리고 싶었는데, 심지어 무에타이 체육관에 있는 애들마저 이 모양이니. 같이 술 먹으러 다니면 자연스럽게 약과 매춘으로 이어질 애들이라 굳이 인연을 안 만드는게 나을 듯 싶다.

 

4. 어제 빠이로 왔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탐색차 온 것인데, 빠이 자체보다도 방갈로형 숙소가 마음에 든다. 풀장과 오두막과 방갈로, 거기에 식당과 인터넷까지 있으면 더 이상 필요할 게 없다. 집중이 잘 될 때는 숙소 밖을 나가지 않고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게 좋으니까.

빠이 시내는 엄청나게 투어리스틱하다. 단위면적당 여행자 대상의 가게들 수로 치자면 카오산을 능가할 정도가 아닐까. 그냥 빠이란 마을이 관광지 같은 느낌. 누군가 말했듯이 시골에 조그만 마을 하나가 –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 – 어떻게 이렇게 북적이게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

빠이 분위기가 싫은 것은 아닌데,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이 마을에 신의 은총이라도 내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관광객이 드글거리는 장소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관광화가 잘 된 것은 여행자 입장에서 편리하기도 하다. 햄버거 피자 과일주스 칵테일 등 현지에 흔하지 않고 여행자들 좋아하는 것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까. 숙소에 박혀서 글 쓰다가 더우면 풀장 한 번 들어가고, 찌뿌둥하면 시내 한 번 나갔다 오고, 가끔 무에타이나 배우러 다니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곧 치앙마이 돌아가면 짐을 싹 챙겨서 빠이로 옮겨야지.

 

5. 빠이 오자마자 밤에 야식 먹으러 갔다가 옆자리에서 만난 애들하고 새벽 두시까지 이런저런 얘기.

간만에 스트레스 풀리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 자리에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여자애가 있어서 스페인어로 한참을 떠들었다. 진짜 세상 좁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별도 포스트로.

 

6. 간만에 올리는 소식인데 그래도 한 호흡에 썼다. 확실히 글 쓰기에 좋은 분위기인듯.

빨리 빠이로 옮겨서 세팅하고 열심히 여행기 써야지.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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